기독교/로마서

에른스트 케제만

s학장 2024. 3. 18. 11:49

序 含

로마인들에게 보낸 바울의 편지에대한 성경주석 HTS,4판 로마서

1925년 5월 내 첫번째 세미나의 세번째 날, 내가 호기심에 가득차서 로마서에 대한 피터슨(E. Peterson)의 강의에 열중하였을 때, 나의 연 구의 진로와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한 신학자에게 어울리는 일이겠 는데ㅡ 나의 삶이 결정되었다. 근본 문제가 제기되었던 것이다. 그다 음 세미나에서 나는 조멘(H.v. Soden)과 불트만(R. Bultmann)의 주석 을 들었다. 그 다음에 나는 바르트(K. Barth)와 슐라터(A. Schlatter) 와 루터와 칼빈의 저서를 두루 섭렵했으며 그것을 비관적으로 연구했 고, 그들에 이끌리어 고대와 현대의 해석을 읽게 되었다. 어떤 문학 적 자료도 이 보다 나에게 더 중요한 것은 없었다. 이로써 이제 내가 나의 주석에서 바울로가 나에게 무엇을 말하며 내가 거대한 산맥같은 학문적 산물들에 몰두한 결과가 무엇이었는가를 보여주려고 함으로 써, 나의 신학 연구의 원은 논리적으로 완결된 것이다.

이런 예비적 언급을 통해서 내가 어째서 나에게 원래 맡겨진 과제, 즉릿츠만(Lietzmann)의 주석서를 수정하는 일을 실행할 수 없었는지 를 설명하고자 한다. 나는 지금도 나의 선배의 저서가 그 목표 및 전 체의 범위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 자신을 그리고 또 내 견해로는 현재의 주어진 현실과 필요를 부정하지 않고 서는 그의 발자취를 따를 수 없었다. 그의 저서는 나로 하여금 가능한 한 짧으면서도 학구적이기를 요청하고 있다. 그밖에도 나는 번역에 있어서조차 내 나름대로의 길을 가야만 했다. 나에게 포기될 수 없 는 것으로 보여진 것은 아무것도 연구에서 회피되어서는 안되었다. 그러나 강조점은 바울로가 신학적으로 의미한 바가 무엇인가에 있다. 이 기준에 따라서 세부적 해석에서 무엇을 고려해야 하며 혹은 우리 의 이해에서 없어서는 안될 것이 무엇인가를 결정하였다. 릿츠만은 그의 독자들에게서 오늘날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는 언어학적, 역사 적 지식들을 전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주석에 있어서 표 준적인 도구에 속하는 여러 종류의 새로운 사전들 때문에 그가 제공 한 도움은 거의 시대에 뒤진 것이 되거나 확충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이것들을 참고할 수 있다. 개념들과 종교사적 맥락들이 새로이 분석될 필요가 없는 한에서, 그것들에 대한 참고 자료들만을 예증을 위하여 약간 인용하였다. 독자들에게 연구 상태에 대해서 대충 알리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이 다양하고 대립되는 해석들을 고려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작정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 나는 과거 50년간의 문헌 을 충분히 다루었다. 이 주석서에는 註를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나는 그것에 대해 만족하지는 않지만, 릿츠만의 경우처럼, 적어도 일 어났던 논쟁을 지시하기 위해서 본문 속에 괄호를 사용하고 있다. 오 랫동안 생각하고 또 여러가지 실험을 한 끝에 나는 보충 설명은 포기 했다. 보충 설명이 단순히 어디서나 이미 볼 수 있는 자료 개관을 위 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반드시 평준화된 조직 신학이 되거나 작은 논문이 된다. 나는 보다 광활한 지명이 저절로 나타날 때 까지는, 비 록 이런 방법이 물론 그 나름의 단점을 가지고 있고, 오류를 내포하 고 있으며, 토론 상대자의 엄격한 감시를 필요로 하기는 하지만, 본 문을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따라가는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끝으 르 나는 내 자신이 릿츠만이 한 것처럼 본문 비평의 문제를 근본적으 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필요할 때는 단순 히 내 개인적 판단을 내리겠다.

반대의 증거를 얻을 때 까지 나는 본문이 어떤 중심적 관심사와 우 리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내적인, 아마도 괄목할 만한 논리를 가지 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서신의 주요 부분들이 서로 구분될 뿐만 아니라 또한 이것들은 다시금 비교적 완결된 단락들로 분할될 것이며, 이것들 맨앞에 내가 접할 수 있었던 문헌을 소개하려 고 한다. 이것이 어느 정도 완벽함에 있어서 성공적이라면, 나는 튀 빙겐의 나의 이전 조교들에게 감사드리고 싶다. 그들은 홍수처럼 밀 려오는 출판물들을 검토하여 그것들을 나에게 알려 주었다. 따라서 나의 연구는 두 가지 상바되는 음직임에 의해 규정된다. 내가 일반적 으르 조직적 명료성을 추구한 것처럼, 많은 세목들과 정보는 비판적 검토를 가능케 하고 공개적인 토론을 유발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함 으르써만 전체가 정확한지 혹은 적어도 결실 많은 반명제로 이끌런지 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진정한 신학에서는, 전반적으로 판단하는 것 이란 있을 수 없으며 언제나 구체성이 요구된다. 어느 때라도 제시되 며, 신학에서 기대되는 바 해답의 잠정적 성격을 알게될 때 신학자는 끊임없는 수고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그것을 벗을 수 없다. 오직 결 과나 혹은 실제적으로 적용하는 데만 관심이 있는 그런 인내심 없는 사람은 주석에서 손을 떼야 한다. 그들은 그런 일을 할 가치도 없으 며, 정직하게 말해서 주석은 그들에게 아무런 가치도 없다.

제4판에 부쳐서

일 년만에 벌써 필요하게 되었던 제3판에서 나는 내 표현을 좀더 정확하게 하고 문헌과의 접촉을 계속하며, 허다한 오류를 정정하려고 노력하였다. 1974년 이래로 로마서에 대한 논란이 치열해졌고 특히 새로운 중요한 주석서들로 인하여 흥미롭게도 그 논란이 풍부해졌기 때문에 나는 제4판에서 근본적인 수정을 계획하게 되었다. 연구 상 테는 나의 언급들에서는 더 이상 드러날 수 없다. 그러나 이미 읽기 에 방해가 되는 자료를 본문내에서 더욱 확충하는 일은 더 이상 불가 능하다. 사실 그것들을 최소한으로 축소하는 것이 적합하게 보이며, 이것이 새로운 관계 자료를 위한 여지를 만들어 쓸 것이다. 불운하게 도 나는 그것을 할 시간도 힘도 없다. 나는 다만 약간의 근거 없는 발언들을 수정하고 이전처럼 친구와 학생들의 도움으로 많은 인쇄상 의 오류를 정정할 수 있을 따름이다. 내가 설정한 한계에 도달한 나 머지 나는 내 자신의 사고와 행위의 잠정적 성격을 용인하며, 기꺼이 다른 사람을 위해 길을 비켜주고자 한다.

1979년 12월 15일 튀빙겐에서

에른스트 케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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