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33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수 없으리라 [로마서 8:26-39] |
그리고 감동적 설교를 하라. 조언이나 간증을 통해서 감동을 주라.
그리고 삶에 적용하는 설교가 돼야 한다.
이 말씀을 듣고 어떻게 살라는 거야 하는 게 나와야 돼요.
설교는 들었는데 도대체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이렇게 되면 곤란하죠.
그게 참 답답한 거예요. 열심히 설명은 해요.
설명은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살라는 건지 핵심이 없어요.
그러면 참 속상합니다. 제가 설교하는 설교를 듣는 입장에서 보면 설명을 너무 많이 해.
설명을 너무 많이 하기 때문에 집중력이 흩어져가지고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건지 메시지가 없어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말씀을 듣고 어떻게 살아야 되겠구나.
이렇게 결단할 수 있는 메시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영혼 구원에 초점을 맞춰라. 특히 난 예배는 오늘 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는 설교를 하라.
그래서
내가 예수를 믿어야 되겠구나. 이렇게 결단할 수 있는 그런 설교가 되도록 초점을 구도자에게 맞춰라.
그리고 결론을 전도해 두라.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심으로 이 말씀을 전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다.
우리의 사명이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설교한 그 내용을 가지고 가족이나 친지 애들에게 가서 오늘 목사님이 얘기하셨는데 이러면서 얘기할 수 있으면 성공하는 거예요.
전도 전도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 말씀을 듣고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되도록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전하라.
아버지 같으면 이 말을 자네에게 어떻게 해줄 것인가 하는 것을 항상 생각하면서 상처받은 이들을 싸매어 주고 위로받을 자 위로하고
깨달을 자 깨닫도록 아버지의 마음으로 말씀을 준비하라.
그리고 설교를 길지 않게 하라. 25분에서 30분 정도 넘지 않도록 설교를 준비하라.
뒤에 중요한 것들을 복사를 해가지고 나중에 붙이기를 해서 이끌어가면 되죠.
서두를 뭐로 할 것인가 어떻게 예완을 뭘 집어넣을 것인가 어떻게
메시지를 적용시킬 것인가 이렇게 잘 전개를 해 나가면 됩니다.
설교회 대학에 대한 곽사님 목사님 강의를 공부를 했는데요.
오늘은 설교의 분류 분류에 대한 내용이
되겠는데요. 첫째는 본문 설교가 있죠 본문 본문 자체가 주제를 이루고 설교의 구분도 본문 내용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설교 대부분 이제 강의할 때 이런 식으로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런 내용이고
그 내용은 이렇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래서 본문을 중심으로 하는 설교 이거 많이 우리 목회자들이 많이 하고 있는 내용인데요.
이제 강해 설교 할 때 본문 설교를 많이 하죠.
둘째는 제목 설교
설교자가 말하고자 하는 제목에 치중하는 설교입니다.
그래서 내가 오늘 사랑을 말하겠다. 그러면 그게 주제가 되기 때문에 본문은 조금 도외시 되는 경향도 있어요.
그래서 제목 설교하는 이들은 그 제목을 가지고 설교를 끌어나가는 그런 설교를 합니다.
근데 이거는 그렇게
본문 자체가 소홀해지기가 쉽다는 걸 기억해야 됩니다.
그리고 교리적인 설교 내가 무엇을 믿느냐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교리적 설교죠.
하나님은 3일째 하나님이다. 그러면 이건 교리적인 설교가 되겠어요.
하나님에 대한 설명이 되기 때문에 그리고 도덕적인 설교는 어떻게 사느냐 그 말씀을 가지고 어떻게 사느냐 하는 메시지인데 너무 이렇게 어떻게 사느냐에 너무 치중을 하면은 설교가 약해지기가 쉽습니다.
결론적으로 그 말씀을 어떻게 적용해서 하느냐가 메시지로 나와야 되죠.
그리고 역사적인 설교 이거는 성경의 역사를 취급하는 설교입니다.
인물이나 그때 당시의 역사 이거를 설명을 해 나가는 설교인데 필요할 때가 있죠.
그래서
다윗이면 다윗 다윗에 대해서 역사적인 그런 내용들을 가지고 설교를 하는 그리고 경험적 설교 이거는 여러 경험들을 주로 설교하는 그런 내용이 되겠는데요.
누가 겪은 일 이야기들 이런 것들을 이제 좀
많이 얘기하는 설교가입니다. 가끔 이렇게 얘기하는 게 아니고 그게 주류가 되는 그런 설교하는 이들이 있어요.
그런데 이거는 너무 많이 하면은 식상이 있죠.
그래서 조금씩만 들어가면 되는데
지나치게 많이 들어가는 설교들을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리고 간증 설교 여러 가지 자기가 겪은 얘기들 다 이런 얘기들을 간증하면서 설교하는 것이죠.
그리고 계절별 설교가 있죠 절기 설교라고도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맥주 감사 추수 감사 부활절 이런 설교가 있고요.
그다음에 신방 설교
신방을 위해서 준비해가지고 설교를 하는 거 신방 설교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설교 요즘 신방 설교에 대한 자료들이 많이 있어요.
그래서 쭉 이렇게 뽑아가지고 우리 성도들과 어떻게 적용시킬 것이냐 하는 그런 내용들을 이렇게 몇 개 가지고서 신방을 하는 거죠.
그다음 부흥 설교. 부흥 설교는 가슴에 불을 지르는 설교이기 때문에 마음속의 설교를 듣고 내가 이렇게 살아야 되겠다.
이렇게 결심을 하게 하는 그런 설교입니다.
부흥사들 주로 설교 많이 하는 거 들어보면 부흥 설교의 내용을 알 수가 있죠.
목회 설교하고는 틀리죠.
부흥 설교는 그 교회에 맞게 그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죠.
오늘 여기 일일붕에 설교를 하게 되는데 여기 지역에 오늘 원하시는 분들에게 맞는 설교를 제가 준비를 해가지고 메시지를 전하게 되겠습니다.
목회 설교는 목회를 하면서 필요한 것들을 많이 말하는 설교죠.
근데 이게 너무 목회 설교를 한다고 그러면서 성도들에게 부담 주는 설교를 자꾸 하면 안 되죠.
건축 건축을 해야 되는데 건축 헌금해라 그러고 자꾸 그러면은 부담이 됩니다.
그리고 전도 설교 불신자를 대상으로 하는 전도 설교 집중적으로 해야 될 때가 있죠.
새 가족들을 초청하는 설교라든지 초청주일 이럴 때 전도 설교를 합니다.
그래서 결단할 수 있게 만드는 거죠.
오늘 설교를 듣고 예수 믿어야겠구나.
그리고
일어나서 예수님 영접기도도 시키고 이런 설교가 되겠습니다.
낮에는 교리적인 설교를 주로 하는데 너무 어렵게 설교를 하면 안 돼요.
너무 어려운 설교를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쉽게 쉬운 알기 쉬운 교리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과연 계신가 3일째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하는 데 대해서 이렇게 교리적인 설교 저녁과 수요 예배는 강해 설교 또 새벽 예배도 강해 설교를 많이 하죠.
그리고 신방 설교
이런 희망 설교는 한 100개 정도 가져야 된다고 곽선희 목사님은 주장하고 있어요.
여러분 몇 개나 갖고 계신지 모르겠는데 글쎄 뭐 하여튼 나름대로 은혜가 되는 설교를 본문을 잡아가지고 그거를 이렇게
성경책 그 안에 갈피에다가 쭉 본문을 써가지고 설교 다닐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걸 인쇄해가지고 붙여놓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가지고 사용하면 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마태복음 로마서 8장 26절로 39절 우리가 잘 아는 내용입니다.
성령이 우리의 연약함을 돕고 계신다.
그래서 성령님이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신다.
우리가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할 때 성령님이 우리를 위해서 탄식하며 기도하신다는 거예요.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중고자 되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시죠.
예수님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시고 성령님도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신다.
우리의 마음을 다 아시죠 성령님께서 그래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성령님이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는데
잘 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맞아들이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지금 의성의 네트웍이 지금 안 좋아서 목사님 강의가 잘 끊어져요.
지금
목사님
안 들립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다.
그러니까 성령님이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데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느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을 확신한다.
이런 내용이 되겠습니다. 사람은 사랑하는 세상의 어려움을 이기는 능력이죠.
누가 여러분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때 우리는 세상을 용기 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우리 할머님과 같이 교회를 밤중에 갈 때가 있는데 우리 할머니가 같이 가면은 전혀 겁이 없어요.
우리가 외딴 집에 살고 있었는데 그 숲속 곡식밭 이런 걸 지나가도 겁이 하나도 안 나더라고.
나중에 보니까 우리 할머니가 키가 내 귀에
어깨도 안 차는 그런 정도의 조그만 키였는데 나는 우리 할머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우리 할머니가 나를 사랑하는 것 때문에 사랑한다는 마음 때문에 전혀 두려움을 못 느꼈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확신을 가지면 세상을 넉넉히 이길 수가 있습니다.
저는 그때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이렇게 능력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사실 개 한 마리를 제가 키웠는데도 우리 개가 덕구였는데 지나가는 사과집에 개 두 마리가 싸 놓은 놈들이 있는데 내가 같이 가면 우리 덕구가 두 마리를 이기더라고.
근데 어느 날 내가 가만히 지켜보니까 내가 같이 안 갈 적에 지켜보니까
우리 개가 저쪽 논둑길로 돌아가지고 집으로 가더라고.
그래서 주인이 있는 거 없는 거와 저렇게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데 누가 나를 대적하리라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우리를 도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에게 기도하신다.
그러므로 어떤 세력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주제는 뭐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나 사랑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그러면 우리는 세상을 넉넉히 이길 수 있다.
하는 그런 고백이 있어야 됩니다. 오늘 설교는 하나님의 사랑 사랑받는다.
그러므로 세상을 넉넉히 이긴다 하는 메시지가 되겠습니다.
이 내용으로 우리가 설교를 하면 되겠어요.
여기 콩깍지 교회에서 제가 설교한 내용 두 편과 다른 분의 설교 몇 편을 실었습니다.
먼저 26절로 30절까지를 내용으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그렇게
제목을 잡아가지고 쓰기로 했어요. 우리 본문 오늘의 본문은 그리스도인이 지닐 진수가 되는 매우 귀한 신앙 간증입니다.
믿음으로 이롭다함을 얻은 사람은 이제는 믿음에 따라 세상을 보고 자신을 봅니다.
오직 믿음으로 이롭다함을 얻은 그 믿음으로 과거를 보면
지나온 그 길이 그렇게 오묘할 수가 없죠.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하나님은 많이 기다려주셨습니다.
많은 사건을 통해 고집세고 못되고 비뚤어진 인간을 이렇게 저렇게 붙들어주시고 인도하셔서 오늘 내가 이 자리에 있게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회고해 보면 모든 지난 날이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요.
그 속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 믿음으로 현재를 보고 미래를 보는 거예요.
하나님이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셨다 앞으로도 인도하신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이죠.
구원받은 사람의 미래는 약속받은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비행기 탈 때 표를 사들고 편안히 자리에 앉아 있죠.
왜냐하면 조금 늦어지더라도 틀림없이 나를 태우고 갈 것이기 때문에.
어느 목사님 미국 갔다가 토요일날 돌아와서 주일날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애틀란타에서 갈아타는데 한 시간 반 여유가 있어서 책을 읽다가 탐독을 하다 보니까 출발 시간이 깜빡 지났어요.
마이크에서 막 소리를 지릅니다. 처음에는 무심히 지나다가 문득 아차 시계를 보니까 자기를 부르는 거예요.
그래서 불이 나게 일어났습니다.
내 이름이 승객 명단에 있기 때문에 이 목사님을 태우고 가야지 그냥은 못 가기 때문에 계속 방송을 하고 부른 거지 바로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약속된 미래를 보고 살아가는 것니다.
우리는 자신만만 해야 합니다. 허우적거리는 인생이 되지 말아야 돼요.
하나님이 나를 천국까지 인도하신다 이런 확신을 가지고 우리가 살 때 세상을 이기는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믿는 사람의 구도는 간단히 말해 세 가지로 요약되는데 첫째로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경륜 능력과 지혜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는 믿음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그 계획 속에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질 때 우리는 세상을 이길 수가 있죠.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상을 주관하시고 끝내는 것도 하나님이 하시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다 하나님이 인도하신다 이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하는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둘째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심지어는 전쟁까지도 그렇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전쟁을 심판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나님이 교만한 인간을 꺾어 구원하시려고 하신 일이라고 봅니다.
세계 1차 대전이 일어나기 직전 서구 신학은 자유주의로 기울었어요.
신학자 교역자 교인 전부가 타락해버렸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이대로 가면 앞으로 50년 내에 성경이 휘지가 될 것이다.
그때 전쟁이 꽝 터집니다.
인간의 이성을 신앙보다 앞세웠던 자유주의자들이 여기서 무릎을 꿇어요.
그리고 칼바르트 부르노 이런 이들이 인간이 하는 일은 형편없다 전쟁은 인간의 작품이다 그러면서 오직 하나님 오직 하나님의 말씀 오직 믿음 이것을 강조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신앙으로 돌아오는 운동을 하게 됩니다.
전쟁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큰 사건 작은 사건 모든 일이 구원론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말하면 나 하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나 하나를 사람 되게 하기 위해서 모든 사건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구속자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볼 때 우리는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 있어요.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런 사건도 일으키는 것이다 하는 생각을 갖는 것이죠.
셋째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생각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볼 때는 이것도 사랑 저것도 사랑 사랑하는 게 없어요.
지금은 잠깐 어렵더라도 기다려보면 다 사랑입니다.
그래서 순간순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고 간증하게 되고 감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믿음입니다.
이제 믿음의 사람은 어떤 의식을 가지느냐 본문은 이를 보여주고 있는데 첫째는 하나님, 하나님, 성령의 인도를 체험합니다.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고 성령님이 나를 인도하신다는 것을 순간순간 깨닫고 체험해야 그다음에 이런 사람의 관심의 초점은 항상 하나님의 뜻에 있어요.
전에는 내가 잘 살아야 되고 내가 기뻐해야 되고 이랬는데
이제 신앙이 점점 깊어지면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하나님이 기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려는 마음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나를 인도하신다는 것을 알고 동시에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가지고 내 뜻을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켜 나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니까 하나님의 뜻 안에서 내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의 뜻대로를 앞세우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가장 중요한 기도는 하나님 오늘 내가 어떻게 하는 거 하나님의 뜻입니까? 나는 오늘 어디로 가야 되며 무엇을 해야 됩니까? 항상 하나님의 뜻을 묻는 기도를 드리게 돼요.
그리고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다
순간순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의식을 갖게 됩니다.
본문을 읽어보면 성령을 중요하게 강조하고 있어요.
성령과 우리와의 관계를 말씀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마술적인 역사가 아니에요.
우리는 가끔 성령받으면 내 성격과 성품과 인간이 확 바뀌기를 원하죠.
마치 마술자가 보자기를 들고 손을 집어넣으면 난데없이 비둘기가 나오는 것처럼 예수 믿자마자 싹 달라지면 좋겠는데 그게 아니야.
성령을 아무리 충만히 받아도 그게 아니에요.
성령과 우리의 관계는 기계론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성령 역사는 어떻게 이루어지느냐 인격적으로 개인적으로 역사합니다.
본문대로 성령이 탄식합니다.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이 말씀은 성령이 감동을 주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성령을 거역하고 성령을 부인하고 다른 길로 갈 때 성령님이 탄식한다는 것입니다.
저렇게 살면 안 되는데 이렇게 해야 되는데 성령이 내 안에서 탄식하고 있다는 거예요.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하면서 우리의 기도를 도와줍니다.
내 기도를 바른 길로 인도해 줍니다.
처음 교회 나와 기도를 시작할 때는
달라는 마음이에요. 계속 달라 달라 그러다가 나중에 성령이 감동을 받으면 이제는 드리겠다는 마음으로 변화가 됩니다.
처음에는 왜 나만 불행합니까? 이렇게 했는데 성령이 감동하면 어쩌면 나만 이렇게 행복하지요 이렇게 변화가 됩니다.
사랑을 받겠다고 기도하는 사람이 이제는 사랑을 베푸는 사람으로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성령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돕고 있다는 거예요.
우리는 정말 미래에 대해서 어떻게 돼야 잘 되는 것인지 잘 모릅니다.
근데 성령님의 연약함을 두고 있어요.
늘 기도하지만은 정직하게 생각해 보세요.
내가 복받을 자격이 있는가? 사실 내게 주신 것도 너무 분에 넘치게 많아요.
스스로를 돌아보니 하나님 앞에 구할 염치가 없습니다.
정욕의 문제예요. 강한 욕심이 나를 붙잡고 있습니다.
이걸 꼭 가져야 되겠는데 꼭 받아야 되겠는데 돼야 되겠는데 이런 집념과 고집 때문에 기도가 제대로 되지 않아요.
정욕에 매이는 동안은 밤새 기도를 해도 몸부림만 치지 하나님과의 교제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소리만 지르고 있는 거예요. 이렇게 듣고 보니 성령이 나를 돕지 않으면 다른 기도를 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님이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내가 정역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줄 때 다른 기도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시다는 거예요.
이 사위 17절은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해 간구하심이라 성령이 우리 안에서 마음을 움직이면서 친히 간구하게 됩니다.
내가 가졌던 인간적인 생각과는 다른 전혀 생각하지 않는 기도 제목이 나와 성령 안에서 기도하게 됩니다.
성령님이 도와서 바른 기도를 하게 되는 거예요.
28절은 너무 중요한 계절인데 우리가 알거니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기 보면 두 가지 전제가 있는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와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 동의어로 나와 있으니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는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부르심을 입었다는 것과 내 자격과는 상관이 없어요.
하나님이 친히 나를 부르신 것입니다.
나는 응답한 것뿐이에요. 부르심을 입은 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모든 것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는 믿음, 그 감정, 그 감격이 그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이제 새로운 깨달음이 있습니다.
바로 삼력하여 선을 이루는 이라 합니다.
하나님이 이루어 가십니다. 내가 이루는 게 아니에요.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헬라 원문으로 보면은 선을 이루도록 합력하신다.
하나님이 나를 주장하셔서 나로 하여금 선을 이루도록 친히 역사하신다는 것을 내가 깨닫게 된다 하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이 전설의 재미있는 얘기가 있습니다.
어느 라비가 여행을 나가는데 나귀를 타고 다녔어요.
소지품은 등불과 수탁과 천막이었습니다.
한 번 어떤 마을에 들어갔는데 이 집에서도 안 받아주고 저 집에서도 안 받아줍니다.
그래서 할 수 없지 하고 동리 밖에 천막을 치고 등불을 켜고 닭과 나귀를 천막 옆에 놓아두었습니다.
근데 조금 있으니까 누군가가 나귀를 도둑질해 갔어요.
하나님께서 어렸으니 알아서 하겠나 하고 있는데 바람이 휙 불면서 등잔이 엎어지고 불이 꺼져요.
설상가상으로 닭 한 마리까지 도둑 맞았습니다.
나비는 이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나 그리고 하룻밤 편안히 잤어요.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마을 전체가 도둑이 들어와가지고 짓밟고 쓸어버렸습니다.
모조리 다 마을이 쑥대밭이 되었어요.
라비는 그때 고개를 끄덕입니다. 어젯밤에 내가 마을에 있었으면 나귀가 소리를 질러 울었다면 등불이 켜져 있거나 닭이 꼬꼬댁 했으면 내가 죽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거두어가심으로 내 생명을 지켜주셨구나.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성도의 마음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회를 볼 때 모든 것이 잘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이거 날아가요 이 꼴이야 이대로 가려면 큰일 나겠네 이런 생각을 해요.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 하나님이신 것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우리의 생활을 가만히 보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합동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인간의 의지보다 하나님이 먼저 계십니다.
인간의 모든 노력보다 하나님이 먼저 계십니다.
오늘의 성경은 그의 선하심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여러분 하나님이 예정하셨어요. 하나님의 의지가 먼저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택한 게 아니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택하셨어요.
하나님의 지식이 먼저 있고 부르심이 있고 의롭다 하심이 있고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합동하여 선을 이루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가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 하는 것을 믿고 간증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이 귀한 믿음과 간증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내 뜻대로 하겠다는 고집을 부리고 살아가지 말고 하나님 뜻에 맡기고 살아가는 우리 가족과 친지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그리고 19절은 끊을 수 없는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는데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사람은 확실한 교리를 가지고 있어요.
그것은 하나님의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실제입니다. 참 사랑의 힘은 무서운 것입니다.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출발해서 모든 것이 선을 이룬다고 하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하는 고백을 하게 되고 간증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런 즉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오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고
믿음으로 오히려 다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엄청난 사랑을 깨닫고 보니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오 하나님과의 나와의 관계가 극대화되면서 모든 문제를 그 속에 흡수해 버리고 말아요.
하나님이 나를 예정하시어서 택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구원하여 주셨어요.
근데 뭘 걱정할 필요가 있겠어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시는데 뭘 걱정합니까?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데 뭘 걱정해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이런 감격이 그 안에 고백이 되게 됩니다.
나는 아무 할 말이 없다 내게 주신 은혜가 너무 족하다는 고백입니다.
돌이켜보면 얼룩진 과거고 부끄러운 과거였지만 내가 살아온 과거 속에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셨습니다.
이것은 너무너무 놀라운 것입니다.
지금 순간순간 되어지는 모든 일들 가릴 것 없이 구원받은 사람의 시각으로 볼 때는 다 하나님의 손길이었어요.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걸 깨달으면서 감격합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리오 하나님 앞에 할 말이 없다 하나님이 나를 여기까지 사랑해 주셨는데 내가 더 이상 무슨 말을 하리오 아무 소원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시편 23편을 잘 아시죠? 여호와는 내가 이 복 자신이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러분 부족함이 없으신가요? 여러분 하나도 부족한 게 없으세요? 부족한 게 많이 있죠 그렇지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걸 깨달을 때 나는 이것이 충분하다는 거예요 만족하다는 거예요.
여러분 사랑하는 관계가 되면
그 사람만 있으면 세상이 다 내 거가 되잖아요.
행복하잖아요. 뭐 우리가 다 이것도 바라고 저것도 바라는데 정말 사랑에 사로잡히면 부러울 게 없습니다.
걱정할 게 없어요.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시는데 내가 무엇이 부족하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
양을 돌보듯이 나를 돌보고 계신 걸 믿는데 내가 뭐가 부족한 게 있겠냐 그걸로 끝난다는 거예요.
하나님 사랑으로 난 족하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일에 대하여 내가 무슨 말을 하리오 할 말이 없다.
시편 8편 4절에서도 다윗은 유명한 신앙 고백을 합니다.
사람이 무엇이 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나이까
인 자가 무엇이 관대 주께서 저를 구원고하시나이까 도대체 내가 무엇입니까? 나는 아무것도 아닌 형편없는 존재, 건물이 많은 존재인데 하나님이 왜 나를 사랑하십니까? 그 일에 대해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오 아무 할 말이 없다.
하나님을 만났고 내가 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다 보니까 나는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모든 것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32절이 중요한 요절인데 여러분 어려운 때마다 이 말씀을 읽고 외우십시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해 내어주시니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를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의 아들까지 내어주셨어요.
애 아들까지 내어주셨습니다. 그 이상 뭐 우리가 도발할 게 있겠어요
내 생명보다 더 귀한 아들입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신 분인데 뭘 안 주시겠어요 적어도 우리의 신앙은 여기에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들까지 주셨는데 뭘 아끼시겠습니까 안 주시겠습니까? 이걸 깨닫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감격하게 되는 거예요.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하는 거예요. 나는 걱정이 없다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신 분 그분이 내게 모든 것을 다 주셨다는 것입니다.
아들과 함께 내게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앞으로도 주실 것입니다. 아들 까지 주신 분이 무엇을 안 주겠습니까? 뭘 타워 아까워하시겠어요
우리는 주님의 사랑이나 크신 은사에 대해서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엄청난 것을 주신 분이 조그만 거 안 주시겠어요? 아들까지 내어주신 분이 우리에게 안 주시겠습니까? 그까지 물질 그게 대수로운 겁니까? 여러분은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독생자를 주신 그 사랑을 깨닫고 동시에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무엇인지 넉넉하게 주신다는 확실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다음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의롭다 하십니다.
최대의 사랑은 무엇입니까? 의롭다 하십니? 물질이 아닙니다.
가장 귀한 것은 죄인을 의롭다 하고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게 없어요. 이것만 얻으면 나머지는 문제가 되지 않죠.
다른 것을 다 받았다 하더라도 의를 받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돈은 벌었는데 못할 짓 많이 했다 그 사람은 죽을 때 힘들게 죽습니다.
의가 우선입니다. 의가 무너지면 안 돼요.
우리는 의를 너무 소홀하게 여길 때가 많아요.
예수를 믿어서 의롭다 함을 얻는 것, 죄인이 의인으로 인정을 받는 것 이것이 가장 큰 축복이에요.
한마디로 주님이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너를 위해서 왜 아들을 내어주었다 너를 내가 사랑한다고 말씀하신다고 하면 우리는 죽어도 좋아요.
어떤 고난을 당하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죽음까지도 저주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괴롭죠.
의롭다 함이 근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 나를 의롭다 하시고 나를 죄 없다고 여겨주셨는데 그까지 조그마한 물질이 문제입니까? 안 주실 리가 없다 하는 그런 믿음을 우리가 가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굉장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나를 의롭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나를 성사하리오
누가 나를 정죄하리오 누가 이 사랑해서 나를 끊으리오 누가라는 말을 세 번이나 말하고 있어요.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를 송사하려 나를 고소할 자가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나를 의롭다 하고 여기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의인이라고 하면 의인이지 누가 나를 죄인이라고 말하겠습니까? 누가 나를 정죄하려 아무도 정지할 사람이 없어요.
여러분이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죄를 조금 지었다고 그래서 마귀가 막 찔러대고 가책을 준다고 해서 우리가 넘어가면 안 돼 나는 이미 의롭다 함을 얻었다 예수를 믿음으로 나는 의롭게 되었다 나를 종주할 자가 없다 하는 믿음을 우리가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이렇게 깊은 사랑의 관계가 맺어졌는데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인스 사랑해서 끊으리오 아무도 끊을 자가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어요.
누가 정죄하리오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예수 그리스도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여러분 얼마나 중요합니까?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서 지금도 간구하고 계신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그것을 잊지 말아야 돼요.
내가 게을러 기도하지 않을 때도 주님은 나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실족함이 없도록 넘어지지 않도록 주님이 기도하고 계셔요.
그 엄청난 사랑을 우리가 받고 사는 것입니다.
근데 뭐가 부족하다는 거예요? 우리는 조금도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담대함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이 사랑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을 의심하는 것처럼 미라는 것은 없어요.
유치하게 뭐가 좀 이루어지면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 뜻대로 안 되면 하나님 나를 버리셨나 보다 감기라도 걸리면 내가 저주 받았나 보다 이렇게 변덕을 그리면 안 되죠.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해야 되는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 리가 없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십자가를 나를 위해 지셨어요.
이 아들을 내어주시고 십자가를 통해 나를 의롭게 여겨주셨어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심을 우리가 확신해야 합니다.
주님 나라 갈 때까지 그분이 인도하실 것입니다.
사랑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됩니다. 본을 보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인 사랑해서 끌리오 강한 하나님의 사랑의 줄이 얼마나 강한지 절대로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고 그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교목인 더위스 목사가 어느 날 캘리포니아행 비행기를 탔는데
옆자리에 어떤 나이 많은 노부인이 앉아 있어요.
이 노부인은 지금 손녀를 손녀 낳은 자기 딸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라고 합니다.
노부인은 조용히 자기 사연을 얘기합니다.
2차 대전 당시 폴란드에서 한 조그마한 여자 아이가 아장아장 엄마 뒤를 따라갑니다.
근데 갑자기 독일 군대가 나타나 총으로 위협하면서
앞서 걷는 어머니를 체포합니다. 그 순간 어머니는 이 아이를 뒤돌아봅니다.
어린 딸은 아무것도 모르고 좋아하고 자기 쪽으로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속으로 질겁을 했습니다. 그는 유태인이었어요.
그때 그녀를 끌고 가던 독일군이 물어봅니다.
저 아이가 네 딸이냐? 그러자 어머니는 태어나게 대답합니다.
내 딸이 아닙니다.
바로 그 뒤에 있던 한 폴란드 여자를 가만히 쳐다보면서 저 여자의 딸입니다 이렇게 대답했어요.
그 순간 마치 의논이라도 한 것처럼 폴란드 여자가 그 아이를 번쩍 들어서 자기 품에 안았습니다.
어머니는 고개를 확 돌리고 아이 쪽을 쳐다보지 않은 채 그냥 끌려가고 맙니다.
영문을 모르는 아이는 어머니가 저만치 멀어진 다음에야 엄마를 잃어버린 것을 알고 울기 시작합니다.
울어봤자 소용이 없죠. 그 후에 이 아이는 폴란드 사람의 양녀로 들어가게 되었어.
아이는 자기 어머니가 내 딸이 아닙니다 하고 고개를 돌리던 그 장면을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어머니를 원망합니다.
어머니가 나를 버렸다 이렇게 생각하며 자랐어요.
세월이 흘러 어느덧 상성한 그녀는 시집을 갖고 딸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먼 곳에 떨어져 있는 지금의 어머니
폴란드를 어머니를 불렀습니다. 이 어머니가 어머니에게 딸은 두고 두고 가슴에 품었던 그때 이야기를 꺼내며 이런 말을합니다.
자식을 낳고 키워보니 이제 알 것 같아요.
어머니가 왜 나를 당신의 딸이 아니라고 했는지를 내 딸이라고 하면 죽거든요.
내 딸이 아니에요 저기 폴란드 여자의 딸입니다라고 했기 때문에 제가 살았던 것입니다.
이제야 나는 어머니의 사랑을 알았어요.
그런 줄 모르고 지금까지 나는 속으로 어머니를 원망했어요.
어머니 사랑을 모르고 살았어요. 하지만 어머니는 자기 생명보다 나를 더 사랑했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자기 자식 사랑하지 않는 어머니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자식들은 부모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해요.
그 조그마한 소원 하나 안 들어준다고 억지를 씁니다.
무지문화 간조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그가 말년에 죽기 전에 자기 일생을 돌아보면서 쓴 기도문 가운데 있는 말입니다.
하나님이요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합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되었으면 나는 아무 짝에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소원이 있습니까? 그 소원이 꼭 이루어져야 되겠습니까? 이루어져야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내 뜻대로 안 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거기에 내가 모르는 엄청난 사랑이 숨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분노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거예요. 그것 때문에 나는 용기백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세상을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순간 병도 치유가 됩니다.
하나님이 나라를 사랑하신다 이걸 믿을 때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그리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상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를 끊을 수 없다는 거, 끊을 수 없다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그 누구도 끊을 수 없는 어떤 환경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그 믿음을 우리가 가질 때 세상을 능히 이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엄청난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온 우리 가족들, 친지들에게 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서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엄청난 복을 누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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