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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설교 || 행.초 035 | 나눔은 행복입니다 | MR | 조용기목사 | 행초 | 행복으로의 초대 | 반전s쿨

기독교/행.초

by s학장 2023. 6. 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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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눔은 행복입니다

본문: 마 25:35-40

저는 평소에 우리 한 목사님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그냥 어느 정도 존경하고 사랑하시느라 의 형제보다 더 가차이 느끼고 늘 한 목사님 건강을 위해서 걱정을 하면서 어디 좋은 약이나 의사가 있다면 제일 먼저 한 목사님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저도 올해 칠십네 살인데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완전히 건강해본 적이 없습니다. 
늘 내일 죽지 모레 죽지 하는 몸의 허약함을 가지고 살았는데 하나님 좀 건강을 주시려거든 화끈하게 주시든지

안 그러면 그냥 데리고 가시던지 둘 중에 하나를 하시지 왜 미지근하게 이렇게 하십니까? 그래도 대답을 안 해주시오. 
그러니 떨어지면 낙동강, 떨어지면 낙동강 하면서 그동안에 당긴 것이 세계를 백여섯 바퀴를 돌고 칠십육개국에

약 400개 도시에서 집회를 열었습니다. 
아프리카나 인도의 오지에서 집회를 할 때는 아마 가나에서 죽지 제가 그릇상에 앉아있는데 몸이 떨리고 기운이 빠져서 강당에서 사람을 죽지 그러고 나가는데 이상하게

말씀만 증거하면 그동안은 살아나요. 그러나 제가 언제나 중국을 갔을 때

강단에만 서면 살아남다. 그래서 요 사이도 주일 우리 가족들이 오늘은 올라가지 마십시오. 
오늘은 몸이 너무 안 좋으니까 올라가서 내가 늘 하는 말은 올라가 가면 산다. 
저기 못 올라가서 그렇지 올라만 가면 성령의 능력으로 산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총으로 자비와 경렬로 두 번 완전히 죽었다가 살아나고 최근에는 삼성병원에 가서 심장수술도 하고 뭐 안 한 게 없어요. 
그러면서도 지금 살아있어서 제가 뭐를 결정을 내렸냐 하면은

90살까지 살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는 자꾸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니까 신란 시절에 와서 못 견디겠어요. 
그래서 제가 사망한 너희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한 너희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너는 하나님 말씀에 선다. 
사람이 살면 칠십이오. 강건하면 팔십인데 팔십은 팔십일 팔십 둘 팔십세 팔십 넷 팔십 다섯 팔십이서 팔십이 팔십 팔십아홉까지는 살자면은 구십을 살아야 팔십아홉까지 사니까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대로 사람이 살면 칠십이고 그거는 팔십이라고 하니까 나는 구십 살까지 살기로 결심을 하고 더 이상 걱정 안 하기로 했습니다. 
한 목사님 우리 걱정하지 맙시다. 예 아예.

저는 우리 한 목사님을 신앙의 동지로, 신앙의 스승으로서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저는 한 목사님처럼 헌신적이고 충성스러운 삶을 살만하지 못합니다. 
한 목사님 신발 들기도 감당치 못합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까지 목회를 오십년 넘도록 하면서 느낀 것은 사람마다 하나님이 예정하시고 택한 사역이 있어요. 
내가 그 길로 가기를 원한다고 그곳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일본 일천만 구령이란 말은 제가 제일 먼저 했습니다. 
저는 일본을 사랑했어요. 내가 한국에 같이 오니까 일본에 반이 있고 한국에 반이 있으면서 일본 선교를 위해서 일하겠다고 해서 제일 먼저 일본에 들어가서 홋카이도부터 교실까지 집회를 하고 다녔는데

그런 말을 하나님은 일본에서 멱살을 잡고 야 이 자식아 한국에 오너라 그 왜 갔노 그러면 일본은 어떻게 합니까? 내가 알아서 하니까 걱정하지 마라. 
그냥 한 목사님이 일본으로 갔다면서

영 계획하지 않은 겁니다. 생각할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나는 한 목사님은 미국이 나가지 일본은 안 갈 줄 알았어요. 
그런데 당신이 원튼 안는 하나님이 작정하시면 별 돌이 없는 것입니다. 
일본에 가서 안 채우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한 가지니다.

여러분이 이 자리에 앉아서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 주의 성령의 은혜를 받도록 기다리지만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정하신 그 길로 여러분 가게 되고 또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되질 않습니다. 
하나님이 예전하시는 그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나 제가 태어나기 전에, 영혼 전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 백성으로 택하시고 여러분과 내가 살아갈 길을 예정해 놓으셔서 그 예전의 길을 우리가 따라서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제가 젊을 때는 잘 몰랐는데 이제 팔십에 가까워 오고 오십년 넘게 목회를 하고 살아온 뒤를 돌아보니까

제 힘으로 한 것이 하나도 없어요. 다 하나님이 하셨지

실패는 제가 했고 성공은 전부 하나님이 하게 해주신 것입니다. 
진짜로 농담이 아닙니다. 얼마나 하나님의 섭리가 놀라운지 말로 다 알 수 없어요. 
오늘 나눔은 행복이이라는 제목을 주시는데 이것조차도 하나님이 제게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오십년 목회를 마치고 은퇴를 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제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교회 목회도 오십년 동안 해보았고 온천하 만국에 나가서 복음도 정교해 보았고 이제 다 끝냈습니다. 
이제 뭐라 할까요

하나님께서 저희 마음속에 주신 말씀이 사랑과 행복 나누는 운동을 하라 사랑과 행복 나누는 운동을 하라.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고통당하는 사람이 국내외에 얼마나 많은데 외국 그걸 향해서는 선한 사람이라는 무브멘트를

엔지오를 세우고 한국에서는 사랑과 행복 나누기 운동을 해서 불쌍하고 가는 헐브 굶주린 사람과 함께 살라. 
그 말씀을 주셔서 그를 시작했습니다. 
그 그 일을 시작하고 난 다음에 외국은 중국과 동남아 일대를 합쳐서 한 4천 명의 어린 아이들에게 심장 수술을 해주었었습니다.

마르시오릇이 돈 많이 듭니다. 걔네들 한국에 올 돈이 없어요. 
빙이값 지불하고 호텔 값 지불하고 심장 수술 비용 드리고 그리고 해드리고 그다음에 북한 평양의 심장병원 세운 여사의

전국끼리 서로 투닥투닥해서 일하다가 말고 껍데기만 세워놓고 내부 설명을 못하지만은 고장 할 것입니다. 
많은 헐벗고 굶주린 사람 집을 지어주고 수리해주고 병원비를 대주고 학비를 대주고 생활비를 대주는 이 운동을 하고 있는데 마침 이 일을 하는데 이 제목을 나에게 주었으니

꼭 먹고 알 먹고 저는 설교 준비하는데 별로 힘들지가 않아요. 
여러분 사실 목사가 설교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설교 한 편을 지으려면은 한 달 이상을 고민을 해야 됩니다. 
몰라요. 설교 잘한 사람은 어떻게 하는지 몰라도

제가 며칠 전에 장경동 목사님을 만나서 식사를 하면서 여러분 부흥사니까 당신 천재에 다녀가 보니까 나는 당신 계속 흉내를 못 낸다. 
어떻게 그렇게 설교를 자주하고 많이 하노 나는 하나 설교 지어놓으면 몇 번 물아 먹어야 되는데 당신은 매일 새로 서로 하는 거 보니까 천재다

이건 자기는 날보 하는 말이 우리는 어르신 그림자도 못 따라갑니다. 
몰라서 그렇다. 나는 설교 한 편 준비하려면 모든 훌륭한 사람의 책을 수없이 읽고 그래도 설교가 안 나오면 그 사람들한테 뺏긴다.

다 뺏기면 들통날 것이고 내용을 좀 빌려가지고서 내 설교를 만들어서 내가 설교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목회자가 여러분 하나님 말씀을 정리한다는 것 쉽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여러분을 목회자로 부르셨거들랑 몇 번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 잘할려면

고생해야 됩니다. 아무렇게나 할려면 그야 상관없지.

어떤 사람이 저기 와서 이제 목사님 은퇴했으니까 남은 인생의 꿈이 뭡니까? 이젠 꿈 다 이루어졌죠? 꿈이 뭡니까? 그래서 다 이루어졌는데 나머지 한 가지 꿈이 있다. 
그건 무슨 꿈입니까? 설교 잘하게 해달라고 설교 잘하게 해달라는 그 꿈이 내 마음에

아니 그 이 상태가 얼마나 설교를 잘 하려 합니까? 내 설교를 교인들이 듣고 하나님 앞에 간을 뽑아 놓을 정도로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설교를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내가 기도하고 그것이 내 꿈이다. 
설교만 잘 하게 되면 더 이상 바랄 것 없다.

여러분도 혹시 제가 기억하거든요. 설교 잘하도록 기도 좀 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눔이 왜 행복이냐 우리 국가적으로 굉장히 저는 행복을 느낍니다. 
이제 곧 지 툰티 서울 대회가 열리지 않아요 지툰티란 전 세계 생산 규모의 85%를 차지하는 선진국 대열의 국가들이 모여서

세계적인 경제 상황을 인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방이 되고 육이오가 끝나고 난 다음에 한국의 진노피가 얼마였냐면 육백 달러였습니다. 
한 사람이 육백 달러에 감히 선진국에 들어오려고 꿈도 못 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3만 불 가까운 국민 소득을 갖게 되고, 그래서 세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게 되고, 더구나 의장국이 된 것을 생각할 때 이거 정말 가슴 뿌듯한 일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 투티 대회에서 20개국의 사상들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보좌관들하고, 그 전문가들하고, 교수들하고, 그 피디 제작자들하고 기자들하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한국에 와서 그 이틀 동안 세계의 이목이 집중이 대한민국에 쏟아지는 것입니다. 
보통 일이 아닙니다. 잔치 치고는 굉장히 큰 잔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인이면 누구든지 이 건국이래 최대의 잔치 중에 하나인 쥐툰티 컨퍼런스를 뿌듯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이 놀라운 행사는 우리나라가 1945년 해방된 이후 2009년 11월 경제협력개발기구 개발원조 사무국 24번째 회원국이 되기까지 50여 년간 600억 달러,

즉 오십조 원의 원조를 받고 살았다는 것을 생각할 때 깜짝 놀랄 것이 그것이었어요. 
우리 오십여 년 동안 손 내밀고 동양 받고 얻어먹고 살았어요. 
아마 6.25를 경험하지 않은 분들은 모르겠지만은 6.25 사이 났을 때 부산 피난 생활에 우리는 꿀꿀이 죽을 먹고 살았습니다.

꿀꿀리지기라는 것은 뭐냐하면 미국 사람들이 군인들이 밥 먹다가 남은 상부 쓰레기통에 집어넣은 거 하나하나 집어내면 더러워서 못 먹잖아요. 
그걸 한꺼번에 솥에 넣어서 끓입니다. 
끓이면 온갖 양분이 다 섞여 나오지 그러면 그걸 또 팝니다. 
그럼 그 꿀꿀이 지을

사 먹으려고 줄을 쓰는데 그것도 돌아오기가 힘들어요. 
그때 제가 외국인들을 볼 때 얼마나 우리보다 훌륭한 사람인 것 같이 보이고 달나라에서 온 것 같 너무나 위대하게 보입니다. 
우린 너무나 못나 보이고 영원한 거지로 밖에 보이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원조를 받는 우리가 원조하는 나라가 되겠습니까? 제가 전 세계 여러 나라를 복음을 전하고 다녔지만은 놀라운 것은 우리나라 만침 녹화 사업이 잘된 나라가 없습니다. 
나무를 많이 심어야 유럽도 지금 우리나라 못 따라와요.

여러분 이제 우리나라를 비하할 필요 없습니다. 
제가 유럽에 처음 갔을 때는 우리나라는 황무지였었습니다. 
나무가 없고 도로가 형편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에 부지런히 한 나무를 심고 마을길도 닫고 도로를 포장하고 해서 어느 곳에 가나 나무가 심어서 부르다 말입니다.

일본이 식목을 잘해서 아주 많이 풀었는데 일본 뺨칠만 치면 우리도 푸르다고요. 
그리고 도로 시골까지 포장이 다 돼 있습니다. 
다녀보면 놀라운 게 포장돼 있어요. 그리고 우리 국민 소득도 그만하게 세계에서 어깨에 힘을 줄 만큼 되어서 어느 곳에 하나 우리가

두고 살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 것입니까 나눔을 받다가 나누어 주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은 기쁨스럽고 자랑스럽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눔은 행복입니다. 행복하기 때문에 나누는 것은 아닙니다. 
나누기 때문에 행복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생계를 웃기 때문에 기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기쁘기 때문에 웃는다고 생각하는데 깊어질 때까지 기다리려면 하루 종일 기다려 안 옵니다. 
웃기 때문에 깊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집에서 밥을 하고 빨래를 하고 집안을 돌보는 우리 교회 성도 한 분이 계신데 나는 그 자매님이 나보다 더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잘 웃어요. 벌레가 하나 기 간 것도 보고도 바다 웃는데 나는 아무리 웃어라도 안 웃어져요. 
그게 무 무섭습니까? 어떻게 잘 웃는데 그런데 하루 종일 그 생활을 가만히 보면 정말 행복하거든. 
자꾸 웃으니까 굉장히 기뻐하고 행복한데 나는 행복하질 않아요.

남에게 설교할 때는 예수를 믿고 여러분이 그런 심을 주께 다 맡기고 마음에 행복하라고 설교를 하면서도 실제 생활에 그 자매님만 없었으면 내가 괜찮겠는데 그 자매님이 있기 때문에 자꾸 비교해 보는 것입니다. 
비교해 보니까 저 자매님보다 내가 훨씬 안 행복하단 말이야. 
저 자매님보다도 나는 사택도 있고 나는 밥도 좋은 거 먹고 돈도 그 자매님보다 많고 옷도 잘 입고

대접도 받는데 왜 저 여자는 자꾸 웃고 나는 안 웃는 놈 말이야. 
그러면 하나님이 기도할 때 하나님, 나도 좀 웃게 해주시옵소서. 
나도 좀 웃어야 행복하지 행복해야 웃기를 기다리면 언제 행복해질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내 마음속에 성령이 하신 말씀이 억지로라도 웃어라 안 웃어도 니가 억지라도 웃으면

그 다음에 기쁨은 뒤따라온다. 수돗물 풀 때 그냥 물이 안 올라오자 되고 문 몇바같이 부어 넣고 하면 물이 오는 것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 많이 웃는 훈련을 하고 우리가

행복하려고 노력을 해야 될 것입니다. 
제일 우리를 웃지 않게 하고 괴롭히는 것이 마음속에 탐욕입니다. 
저는 하도 가난한 시대에 태어나서 목회도 천막을 치고 불광동에서 가만히 깔고 가난하게 쌓여서 전부 거지들만 우리 교회가 됐어요. 
그렇기 때문에

신약이 좀 다릅니다. 우리 아까 하영주 목사님이 말씀하시듯이 장로교 신학자들이나 목사들에게 굉장히 오해를 많이 받았습니다. 
왜 그러냐면 저는 절대 가난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제가 신방을 갔는데 한경기도 북청에서 피난온 가족인데 아들만 열 명을 낳아서 길러요. 
그런데

판자촌에 가난한 단간 방에 온 식구가 다 사는데 내가 가서 아주머니, 예수 믿으십시다 하기간에 문을 열고 나와서 얼마나 화를 내는지 말로 다 알 수 없어요. 
아니 당신의 예수쟁이들 그래 죽으면 천당에 그렇게 아름다운데 간다면서 아 그럼요. 
눈물도 근신도 탄식도 이별하는 고하는 아는 것이 없고

배고픔도 없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거짓말 하지 말아라.

그렇게 아름다운 천당을 예비한 하나님 같으면 왜 살아있는 지금의 삼십세 때 밥도 못 먹여주는 잘해달라는 말 안 한다고 우리는 밥이라도 먹여주고 옷이라도 입혀주면 하나님 살아계신 하겠는데 당신의 예수쟁이들 죽고 천당 가서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곳에 가 이 땅에서는 헐벗고 굶주리고 살아라.

그런 위선자가 어딨냐고 우리 집에 다시 오지 마라. 
그런데 그걸 듣고 입을 다 그 말이 맞았어요. 
내가 많은 설교를 듣고 감동을 받은 일이 많지만 그 자매님 그날 설교를 듣고 내가 감동을 받았어요. 
그런 내가 천막 교회에 왔어요. 천막 교회에 와가지고서 가만히 엎드려도 주님 오늘 그 자매님이 한 말이 참말입니다.

여태까지 내가 거짓말쟁이였습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이 그렇게 좋은 하나님, 천국을 예비해 놓은 하나님 같으면 왜 이 땅에서 헐벗고 굶주린 사람은 우리 교회가 밥도 안 먹여주고 옷도 안 주면서 예수 믿으라 갑니까? 천당만 가는 것이 교회니까

그 하나님이 교회에 계시다면 천당만 갈 뿐 아니라 먹고 있고 마시는 문제도 함께 해결해야 될 것 아닙니까?

많은 목사님들이 예수 믿으면 헐벗고 굶지르고 가난해도 참고 견뎌야 하는데 난 못 참겠습니다. 
부자들은 참을지 몰라도 이 가난한 사람 앞에 내가 무슨 말 하겠습니까? 그러면서 성경을 읽으니까 성경에 보니 예수님은 목회를 시작한 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 요한복음 보니까 삼분째 이는 병 고치고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 먹이고 돌보는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예수님이 순수한 복음만 증가한 것은 삼분지 일 정도 꼭 금 고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 주님께서 돌봐주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광야에 나갔을 때 오후가 되었었습니다. 
왜 오후에 나왔냐면 광야는 더우니까 햇빛을 피해서 땀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광야에 나갔는데 남자만 오천 명 그러니 상상할 수 있잖아요. 
본 여자 합치면 만 오천 명이 되지 이만 명은 되었을 겁니다. 
그런 군중이 모였는데 예수님이 어떻게 하지? 알면서도 빌립보고 빌리아 저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했습니다.

그럼 빌립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주님 말씀을 증거하고 병만 고쳐줬으면 충분합니다. 
먹는 문제까지 교회가 해결할 필요 없습니다. 
각자 집으로 돌아가고 동지로 가서 사 먹을 것을 스스로 문제 해결하더라도 이 식적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자 라지 무슨 교회가 밥 먹고 있고 마시는 거지 해야 됩니까? 빌립이 요사이 현대어로 말하면 그렇게 예수님께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빌립아 저들을 어디에서 우리가 떡을 사서 저들을 먹이겠나 했는데 빌립은 단양에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복음도 전하고 병도 고치고 먹는 것도 해결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안 들어왔습니다. 예수님 이게 부리도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어림도 없습니다. 
그걸 가지고 와서 주님 이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얼마나 되겠습니까만 가져왔다.

문제는 그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양해에 있지 않고 그것을 가져온 신앙의 질에 있는 것입니다.

안드레이는 교회가가 말씀만 전가하면 되었지 인식적 문제는 해결 안 해도 지가 굶어 죽던 천당에 올라가면 잘 살 테니까 내버려 놓아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보리떡 자식의 물고기 두 마리를 내놓으 예수님이 그것을 가지고

귀만 명의 사람들이 다 배불리 먹고 열두 바울이 남게 하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달라졌어요. 나는 그날 천막에서 엎드려서 주님 나는 안드레와 같이 우리 천막 교회가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천막 교회에서 그래도 우리가 먹는 빵하고 우리가 입는 옷하고 신발하고 나누어 주면서 예수를 전도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부자 돼야 되겠습니다.

부자 돼야 되겠어요 안 믿는 사람들이 부자가 돼가지고서 나이트 클럽에 가고 술 먹고 엄청 망칭하고 좋은 차 타고 다니고 온갖 질환을 당하는데 왜 예수 믿는 사람 부자 되가지고서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

도와주는 것이 하나님 뜻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빌리 아니고 나는 안 데려가 되더라도 하나님 우리 부자 되게 해주시옵소서. 
그때 제가 깨달은 것은 탐욕만 져버리면 돈이 재산같이 많아도 악이 아닙니다. 
탐욕이 들어와서 물질을 악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탐욕이 떠나고 나누어주는 선이 들어오면

물질은 다다익선입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지금 여러분 우리 한 목사님께서 전 세계적인 하나님의 사업을 하고 계신데 이 교회가 크고 교회 나오는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축복받아 성공해서 부자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판자촌을 가서는 일 못해요

여러분 우리 교회도 교인이 80만 가까이 되고 교회가 커서 부자니까 전 세계적으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래도 제가 은퇴할 때 내 제자, 내 밑에서 내가 직접 데리고 있던 제자 스물한 명에게 독립교회를 다 짓든지 사든지 해서

독립시했습니다. 한 교회가 적어도 다 백억 이상의 돈을 도움 받아 나갔는데 그 애가 부자가 아니면 어떻게 도와줍니까? 실컷 부려 먹고 난 다음 발기로 차버리고 내 나가니까 느 미래는 나는 모르겠다. 
그렇게 할 수 있어요. 너 내 밑에 있을 때 월급 받아먹고 살았으니까 내 제자들 그 내 수위 아들 가라.

그러나 그게 주님의 뜻이 아니거든. 그래서 요한 3세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내 영원히 잘 됨 같이 내가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전인구원을 저는 말합니다. 전인구원 하나님의 영혼만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범사의 생활도 주님께서 구원하셔서 탐욕을 져버리고 가난을 물리치고 축복해주셔서 그를 통해서 선을 행한 자,

헐벗고 굶주리는 자에게 먹을 것과 이것을 나누어 주는 교회가 되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날 목회의 패러다임을 우리 한국교회가 바꿀 때가 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빌립식 목회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먹을 것은 자기가 해결해야지요. 돈이 이백 대 나리가 되는데 왜 교회에 돈을 써요 먹을 것은 자기가 해결해야지요.

근데 분명히 예수님은 저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는데 안 주려고 그러거든 안더라만 보리들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 너무 적은 대게끔 하니야 적은 게 문제가 아니에요. 
정신이 문제예요.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과 같이 젊어지고 가겠다는 정신만 있으면 주님이 그것을 축복을 해주어서 삼십배, 육십배 백배가 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제가 오십 년 목회하면서 내 눈으로 봤어요. 
우리 교인들, 그 나라가 그 애를 먼저 구하고 주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한 사람들 하나님이 귀엽고 축복해 주신 거 봤습니다. 
모두 다 거대한 재벌은 안 되어도 자기 먹고 남은 거 나눠줄 수 있는 충분한 축복을 주시는 것을 내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물질이나 부유 그 자체가 나쁘지 않아요. 
탐욕이 생기면 물질이나 부여에

세상 때를 묻히기 때문에 나쁘지 탐욕만 져버리면 다다익스입니다. 
여러분 오늘 전부 다 100만 쟁자 되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얼마나 하나님 사업을 많이 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참 예수 사랑을 보여줄 수 있잖아요. 
말은 쉽습니다. 주님이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 피란민 부인이 말한 것처럼 천당이 그렇게 아름다우면 왜 이 지상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어디이냐 누가 보여줍니까? 교회가 그 일을 안 하면 누가 그 일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 한국교회가 이제는 내 교회만 가지고 목회하지 말고 이 나눔의 생활을 해야 한국 사회에서 버리면 안 나갈 것입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다가와야 됩니다. 나눠야 돼요.

사랑도 나누고 행복도 나누고 그래서 사회가 교회를 통해서 오늘날 예수님이 살아계시다 교회에 가봐라 예수님이 살아계시다 천당만 천당이 아니라 교회가 바로 천당이다 그렇게 말을 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아 돈이 없어서

그러니까 내가 자꾸 말하고 싶은 것은 오병 이어만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더 많이 있을 필요가 없어요. 오병 이어 플러스 예수님이면 되는 것입니다. 
광야에 예수님만 계시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요. 
그러니까 오병이 여기 있으면 예수님만 계시면 예수님께 기도하고 주님 뜻에 의지해서 일하겠다면 주님께서 길을 여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물질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면 그 물질은 굉장한 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탐욕이 있는 곳에는 기쁨이 없습니다. 
탐욕은 악입니다. 아무리 물질이 많아도 탄력이 있는 곳은 행복과 기쁨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눔이 있어

선한 역사가 일어나면 그 속에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마태복음 25장 31절로 46절에 나눔은 주님을 섬기고 기쁘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은 눈에 안 보이잖아요 예수님은 하늘나라에 가 계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재림하셔서 곧장 양의 나라와 염소의 나라로

세상 사람들을 분리시키고 심판하게 되어 있는데 누가 양이고 누가 염섭니까? 주님께서 내가 굶었을 때 먹여주고 내가 아팠을 때 입원해 치료해주고 내가 헐었을 때 입혀주고 내가 있을 곳 없을 때 있을 곳을 마련해 주었으니 내가 보답하겠다.

여인들이 기절을 합니다. 언제 우리가 주님 헐벗고 굶주리고 병들고 힘없이 떠돌아다니는 걸 봤으니까 이 지극히 적은 저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나를 위해서 해준 것이다. 
지극히 적은 점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텔레비 카메라에 찍혀 나오고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박수받는 큰 일은 다 하기를 원합니다. 
옥하는 목사님이 늘 주장하는 겁니다. 
지극히 적은 자, 제자로 삼아서 적은 신자, 적은 교회, 적은 교육자들을 도와줘야 된다고

여러분 오카노 목사님 참 겸손한 분입니다. 
나는 오카노 목사님을 어디에서 제일 처음 만났냐 하면 하루 내 사무실에 장로교 목사님이 전화가 왔다 그래요. 
그래서 그때는 제가 장로교 목사님에게 핍박을 많이 받을 때 이미 했습니다. 
요사이는 핍박을 안 해줬는데 그땐 핍박 굉장히 많이 받았던 그래서 또 무슨 요구를 하려나 싶어서 여보세요 의견에 너무 환호합니다.

왜? 불러서 좀 만나게 해. 시간 좀 내주십시오. 
언제지? 오십시오. 내 선교센터에 이분이 오셨어요. 
오셔서 왜 왔습니까? 그러니까 안수좀 받으러 왔습니다. 
그래 내가 아니 단식하시니 훌륭한 분이 내게 안수를 받다니 무슨 그런 말씀이 있습니까? 내가

하고 있는 교육훈련 학교와 조직은 잘 돼 있는데 내가 파워가 없어요. 
내가 가르친 데도 파워가 없고 기도한데도 파워가 없고 내가 파워가 없어요. 
그 파워를 얻기 위해서 미국에 가서 미국에 저명한 신령한 사람에게 안수를 받아야 되겠다고 기도하니까 마음속에 성령이 말하기를 한국에

성령 받은 사람인데 미국까지 왜 가노 왜 한국 사람을 무시하고 미국으로 갈라 하나 한국 사람 누굽니까? 그러니까 조용기 목사니까 다 욕을 하지만은 나는 조용기 목사를 히스기아 왕보다 더 사랑한다. 
아라 그래서 왔다고 안수하라고 합니다. 
근데 나 죽어도 안수 못한다. 나 당신에게 안수했다가 잘못하다가 벼락 맞을 수 있대.

그러나 머리를 끌어안고 머리를 내 믿는데 어떻게 합니까? 나도 끌어안고 같이 얼싸 안고 같이 성령의 능력을 달라고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 길로 나하고 친해져서 신앙적으로 나하고 도무지 안 맞는데 사랑으로 서로 마음이 맞아서

많은 일을 서로 이야기하고 동의했는데 내가 꼭 아까운 것은 그분이 더 살 수 있는데 갔어요. 
왜냐 나하고 신앙이 달라서 나는 마귀하고 싸워라. 
병은 마귀가 주는 것이다. 싸우면 더 산다. 
내가 당신보다 두 살 후인데 나만 치면 살아라. 
이 년은 더 살 수 있다. 그러니까

싸우라는 아니야 병도 하나님이 주신 뜻이다. 
하나님이 나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주신 병인제를 알고 받아듭니다. 
그래서 여보시오 하나님이 변하시기 위해서는 병 같으면 안 죽는다. 
나처럼 지어질 건다.

근데 당신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준 병이 아니고 죽을 병으로 이도 지금 병원에서 죽는다고 그랬다. 
그러니까 이거는 하나님 뜻이 아니니까 싸워야 된다. 
안 잡아요. 그러니까 그냥 가셨단 말이에요. 
내가 너무 억울해서 그 장례 그 조문식에 가서 내가 통국어라 울은 이유가 체면도 없이 내가 통국어로 울었습니다. 
너무 아까워서요.

그 신앙이 나하고 달랐기 때문에 나가 하영재 목사님 나 신학에 동의해 주어서 내가 너무 고맙게 생각해요.

아 저 양반 또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카면 이 일을 어떻게 감당합니까? 절대로 하나님이 주신 병은 안 죽어요. 
질질 끌고 죽을 것 같아서도 안 죽는다고 바울 선생이 그렇지 않습니까? 바울 선생이 아주 죽을 병에 걸렸는데도 하나님께 세 번 기도해도 안 고쳐주시고

병든 그대로 하나님이 능력을 주어서 평생을 복음 전하게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이제 두고 보세요. 나는 우리 하양지 목사님은 안 주고요. 
구십까지는 산다고 마음에 그런 결심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근데 주님께서 이 세상에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병드는 사람을 우리가 돌봐주는 것이 주님께서 나를 돌봐주는 것이라고

그러므로 그것을 나중에 주님 보답해 주시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과 자비를 베풀 때 자산 사업한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섬긴다는 경외심으로 도와야 되겠습니다.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 너 내 자진 사업한다. 
그리고 정한이 느끼면 안 돼요.

주님을 섬기듯이 그들을 섬기고 모시고 돌봐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시간을 너무 많이 차지하기 때문에 거쳐야 되겠는데 가장 큰 문제가 권력자는 권력을 줘놓으면 안 내놓고 목사는 마이크만 주면 안 내려놓습니다.

제가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베풀면 그리고 나누면 그것이 씨앗이 돼가지고서 큰 축복을 하나님이 부어주시게 된 것입니다. 
과부에게 그릇을 충분히 빌리라 거기에 기름을 부어서 그걸 팔아서 빚을 갖게 한 것처럼 그릇이 충분히

만들기 위해서는 충분히 우리가 도움을 베풀어야 되는 것이다. 
저는 한평생 내 부여 의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넌 마음속에 한 번도 내가 가난하다는 의식을 가진 적이 없어요. 
왜냐 내가 있는 거 다 틀어놓았으니까 내가 뭐 사람 만든 것이 많기 때문에 해외 구제, 국내 사업을 위해서 다 털어놨는데

그러고도 좀 남는 것은 마누라에게 다 뺏겨버리고 나이를 먹으니까 젊을 때와 달라서 젊을 때는 내가 마누라에게 큰 소리 했는데 이제는 큰 소리도 못하고 이제는 있는 거 다 보고 하고 탔어야 돼요. 
그러나 내 마음속에 절대로 가난한 의식을 가진 적이 없는 것은 내가 하나님께 심었으니까 주라 그리하면 돌려줄 것이니 곧 후회되어 눌러 흔들어 넘치게 해서 안껴주리라

그걸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나 주님이 나를 돌봐주신다 나만 아니라 우리 성도들도 꼭 한 가지입니다. 
주면 하나님이 흔들어 눌러 넘치게 해서 앉게 해주신다 그렇게 분명한데 왜 우리가 사랑을 나누지 않고 같이 잘 살려고 노력하지 않는지 알 수가 없어요.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봐. 
우리가 정말 복을 받으려면 받으려고 하지 말고 자꾸 주는 것입니다. 
권내려할 로마 군인이요 이방 장교요 유대인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지만은 기도 많이 하고

열심히 구제를 많이 했습니다. 성경에 뭐라고 그랬습니까?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을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억하셔야 기도만 하지 말고 구제도 많이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이란 기도와 구제가 같이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구제가 없는 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다가 우리가

천당만 가면 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천당은 물론 가야 돼요. 천당도 가고 구제도 해야 되는 것입니다니다. 
함께 손잡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한도까지는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못하는 것은 정부가 해야할지라도 그렇게 하면은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용조 목사님이

무엇을 생각했는지 이런 운동을 전개해서 우리 같은 사람 보고 와서 강연하라고 했는지 모르겠지만은 참 잘하는 겁니다. 
이렇게 해야 돼요. 모든 교회 목사님들이 이걸 해야 돼요. 
그러면 우리 한국 사회에 예수님이 살아남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우리를 통해서 이 사회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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